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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있니?] '꽃신' 신고 사라진 6살 딸 경하, 44년간 헤매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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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10-17 10:42 조회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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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바닥 드러누워 꽃신 사달라던 딸, 그 신 신고 나갔다 실종
발톱 뽑히도록 찾았는데, 美입양 성장…DNA 확인, 18일 상봉

 

44년 만에 잃어버린 딸을 만나는 한태순씨(67)가 16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소재 자택에서 딸 신경하씨(49) 어릴 적 사진을 보이고 있다. 사진 속 경하씨는 예쁘게 차려 입은 한복에 꽃신을 신고 있다.2019.10.16/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안양=뉴스1) 박동해 기자 = "44년간 찾던 꽃신을 찾았다."

여섯살배기 딸이 시장 바닥에 드러누워 울기 시작했다. 꽃무늬가 예쁘게 그려진 고무신을 부둥켜안은 아이는 사달라고 조르며 떼를 썼다. 주머니에 동전 몇개밖에 없던 엄마는 떼쓰는 아이를 어르고 달랬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런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신발가게 주인은 동전 몇개에 그 꽃신을 내어줬다.

아이는 꽃신을 참 아꼈다. 밖에 나가 놀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예쁘게 닦아 현관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엄마는 그런 딸의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그 꽃신을 신고 놀러 나간 아이가 어느날 돌아오지 않았다. 딸을 찾아 나선 엄마의 신발도 물이 들었다. 딸을 찾아 수 없이 걸었던 엄마의 발톱 10개는 남아나지 않고 모두 뽑혀 나갔다.

"내가 찾던 꽃신 찾았다." 엄마 한태순씨(67)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는 최근에 바뀌었다. 지난 44년간 찾아 헤맨 딸을 찾게 된 뒤였다. 딸은 집을 나간 뒤 보육원에 보내졌다가 미국으로 입양됐고 그동안 친부모를 찾고 있었다. 딸은 자신이 보육원에 맡겨져 입양을 갈 때까지의 기록과 사진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딸은 입양기관에서 찍었던 사진을 태순씨에게 보냈다. 예쁜 한복에 엄마가 사준 꽃신을 신고 있는 모습이었다. 꽃신이 돌아온 것이다.

딸 신경하씨(49·미국명 라우리 벤더)가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한국 나이로 여섯살 때인 1975년 5월9일이었다. 두살, 네살 터울의 동생 둘을 데리고 시장에 가는 엄마에게 '따라가지 않고 친구들과 놀겠다'고 말한 게 태순씨가 들은 경하씨의 마지막 음성이었다. 시장에서 돌아와 아무리 기다려도 딸은 돌아오지 않았다.

"경하가 근처에 사시는 할머니 집에 가서 자고 오는 줄 알았어요. 가끔 찾아가고는 했거든요." 하지만 이튿날 할머니 집을 찾아가 봐도, 동네를 다 뒤져봐도 경하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2년여간 경하의 어린 두 동생을 양옆에 끼고 태순씨는 딸을 찾아 무작정 돌아다녔다. 곧바로 실종신고도 하고 아이에 대한 소식이 들려올까봐 매일매일 경찰서로 출근을 하다시피 했다.

누군가 굿을 하면 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말에 태순씨는 친정아버지가 소를 팔아 마련해준 월세 보증금을 빼서 굿까지 했다.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당시 살고 있던 충북 청주시 인근을 꼼꼼히 뒤졌지만 경하씨는 찾을 수 없었다. "이러다간 남아있는 자식들도 잃어버리겠다." 문득 태순씨는 딸을 찾는 걸 잠시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 운전을 하던 남편의 수입으로 하루 벌어 입에 풀칠하던 시절, 태순씨에게는 남은 두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잃어버린 딸을 찾아 나설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딸은 44년간 평생을 눈꺼풀 안에 새겨놓은 문신처럼 눈만 감으면 그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15년이 지난 1990년. 태순씨는 한번 딸을 찾았었다. 대구에서 딸과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연락이 왔고 한걸음에 달려간 그 자리에는 이제 갓 성인이 된 여성이 있었다. 어릴 때 경하의 모습과 똑닮은 모습이었고, 그도 태순씨가 엄마라고 했다. 그런데 태순씨가 지극정성으로 돌봐도 딸은 다른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았다. 결국 3년째에 딸은 "엄마를 보는 순간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랬어"라며 거짓말을 했다고 털어놨다.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태순씨는 이것 또한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새롭게 얻은 딸에게 직장도 찾아주고, 남자친구와 결혼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이 딸에게 친엄마를 찾아주려고까지 했다. "친엄마는 1주일만 보육원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나를 버렸어"고 말하는 딸에게 태순씨는 "그럴 부모가 없다"며 친엄마를 찾아보자고 다독였다.

태순씨가 이런 과정을 겪는 동안 집을 나온 여섯살 경하씨는 무슨 이유인지 기차를 타고 제천까지 갔다. 경하씨가 보내온 글에 따르면 불확실한 기억이지만 한 경찰관이 경하씨를 제천에 있는 보육원으로 보냈다. 한때 보육원에서 음식을 제대로 주지 않아 경하씨는 친구와 쓰레기통을 뒤져 달팽이, 벌레 등을 먹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6년 공항에서 친구들과 흩어져 미국 버지니아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양부모 밑에서 자라 학교를 졸업한 경하씨는 간호사가 됐고 지금은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의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뤘고, 딸을 낳았다. 의대를 다니는 딸은 졸업을 앞두고 있다. 경하씨는 진짜 자신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었지만 이름도, 생일도, 주소도 무엇하나 정확히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와 태순씨가 지금 살고 있는 한국의 안양시. 1만㎞가 넘게 떨어진 두 도시에 있는 모녀를 연결해준 끈은 지워지지 않는 혈육의 흔적인 DNA였다. 4년 전 태순씨는 입양된 한인들의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친부모를 찾아주는 비영리단체 '325캄라'(325kamra)에 대해 알게 됐고 곧바로 DNA를 등록했다. 그리고 최근 경하씨가 DNA를 통해 부모님을 찾아보자는 딸의 권유에 DNA를 등록하게 되면서 44년 만의 만남이 이뤄졌다.

지난 4일 325캄라로부터 딸을 찾았다는 연락을 처음 받았을 때 태순씨는 "사기 치지 말아라!"는 소리부터 대뜸 나왔다. 하지만 DNA 결과가 일치하고, 조만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실감이 나면서 손발에서 경련이 일었다. 태순씨는 이후 경하씨와 직접 통화를 하기까지 3일간의 시간이 "수십년의 세월처럼 길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태순씨를 경하씨와의 첫 통화를 기억하기 위해 통화기록이 남긴 스마트폰 화면을 캡처해 저장해 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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